오래전에 다녔던 국문과 수업중에 음운학 이런 과목이 있었던 거 같다. 결론은 이 수업을 듣지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공수업이었는데도 말이다. 우선 나는 시를 쓰기위해 그 과로 갔고, 시보다는 '가투'에 몰두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에도 언어인류학이라는 세부분과학문이 있었다. 아마 선택하지 않은 과목이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음운학의 그 이해불가한 규칙들은 '시인지망 문청'에겐 너무 어려운 분야였다. '공부 좀 해보려'했던 문화인류학에서도 마찬가지..

 

최근 나는 '말', 특히 개념을 분명히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공부자께서도 '명분을 바로세우는 것(정명)'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ACC'와 '아시아문화전당'이 같은 곳이라고는 나는 생각할 수 없다. 때문에 언어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일본어 특유의 어투가 살아있는 번역이 웬지 친근했다. 일본 아니매를 꽤 즐겨보았던 경험이 새록새록 거린다고나 할까,,, 이런 번역이 학문에서도 가능한지 약간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 책을 즐겁게, 줄기차게 읽어내려간 나에게 놀랐다. 사회언아학자의 글을 읽었으니 이 페이스로 언어인류학에 도전해야만 옳았겠지만, 책을 고를 수가 없다. 일단 쉼표.

 

 



즐거운 독서였다. 아직 8개월이 남았지만, 올해 최고의 독서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21가지 제언'은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반복이 아닌 친절한 해설서인 듯 했다. 그럼에도 새롭게 읽는 재미를 불러일으키니, 그의 대단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의 3부작의 역자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이제 즐겁게 '중국 책'으로 옮겨갈 수 있겠지만, 하라리의 3부작은 두고두고 되새김질 할 것 같다. 


똥이될 지, 하품만 나올지는 두고 두보 볼 일이지만,,,



하라리의 3부작을 대하는 나의 첫느낌이 어떠했는지는 , '호모 사피엔스'를 통해 밝혔다. 2부, 호모 데우스를 읽은 후의 느낌은, 신기한 경험 중이라는 것이다. 


먼저, 읽기를 멈추기 어렵다. '꼭'결말을 보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서지는 그런 독서 경험이다. 때문에 일단, 여기까지만 끄적거리도록 하자.


3부로 넘어가야겠다. 

 

스킨을 바꿨는데, 힘들다. 글쓰기 메뉴 찾는데 5분은 걸렸다. 사진 올리기도 이상하다. 

 

 

그 유명한 3부작의 첫권을 읽었다.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난 소위 고전이라는 것들에 대해 약간의 반발심을 갖고 있다. 즉, 그런 책들은 웬만해서는 읽지 않는다. 인류학도의 필독서이자 사피엔스의 저자(하라리)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총.균.쇠] 같은책이 그런 예다. 이 책은 우리집 서가에 잘 꽃혀있을 것이다. 

 

2월말 경에, '혁명의 시절'적의 옛동지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마 중국 얘기를 계속했던것 같고, 옛동지는 하라리 얘기를 했던 덧 같다. 어느날 문자가 왔다. 약속했던(?!) 하라리 책을 보낼테니, 주소를 보내달라고. 일단 당황했고, 난 기억에 없지만 약속했다니, 몇일 후 마지못해 주소를 보내고 드디어 하라리의 3부작을 받았다. 

 

걱정과 난감함이 몰려왔다. 나를 기다리는 '중국책'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고, 분명 하라리에게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책이 도착하고, 중국불교가 한반도와 일본의 문화에 끼친 영향을 알아본 후(알다시피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최대한 느긋하게 읽게되었다. 1권, 사피엔스.

 

이 책은 첫째, 하라리의 놀라운 '태도'에 감동했다. 모든 선입견과 무수한 도그마들의 전제를 잊어라.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결국엔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자세'를 확인했다. '그런 것은 (1억년 단위의)우주역사에서는 사소할 뿐이닌까.'

둘째, 잘 읽히고, 재미있고, 끊없는 지적욕구를 불러온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를 다시 읽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그 지식이 주는 충격들이 결코 가볍지가 않다. 이것들을 안다는 것과, 이것들에 그동안 무심했다는 것과, 이것들에 대한 앞으로의 나의 태도에 대해 자신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셋째, 그의 결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만, 아직 2권의 책이 남아있다. 다 읽은 후에 그의 결론에 대해 뭔가 답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 

 

몇일 휴가를 받아 고향에 다녀오는 병사의 마음을 요즘 느끼고 있다. 이제 돌아가야할 날이 5일 남았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이틀남았다면 모든 일상이 귀찬을 뿐이다. 면도도, 심지여 이도 딲지않고 폐인이된다. 이제 내일 아침 KTX를 타야하는 밤이 오면 나는 공포에 질린다. 이런 이유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이제야 '읽어냈다'(이것은 견뎌내는 것과 같다). 이제 귀대를 했으니, 2권 '호모데우스', 3권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조금은 즐겁지 않을까,,,

 

이 책을 기꺼이 나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인류의 미래를 '희망'하는 '옛동지'에게 경의를 보낸다. 


이 이야기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썼다면, 한국 언론은 난리가 났겠지.. 난 베르베르의 '신'을 기준으로 '신'을 포함한 그의 모든 소설을 읽은 팬이니, 이것은 그를 무시하는 표현은 아니다. 도리어 이재일, 또는 한국 쟝르소설이 얼마나 저평가 받고 있는지 한탄하는 얘기다. 


그렇다. 나는 이재일의 '쟁선계'를 읽었고, 지금 카카오스토리에 연재중인 그의 무협소설도 꼬박꼬박 100원씩 지불하며 읽고 있으니 그의 작품엔 기본적으로 호의적일 수 밖에 없다. 아무튼 나는 '칸의 제국'을 집 책꽂이에 꽂으면서 스펜스의 마테오리치 책을 찾던 중 발견하였다. KTX에선 가벼운 책으로 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재일스런 책이었다. 


물론 불만은 있지만, 굳이 문제삼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 책의 편집자가 유사역사학과 열심히 싸우고 계신 '초록불 이문영'님이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너그럽게 해주었다. 


다른 이재일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참심하고 획기적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저자와 출파사는 그래서 좀 서둘렀나보다. 책 곳곳에 교정을 요청한 저자의 '신호'가 아직 남아있다. 

문서를 통해 고대 한반도의 다양한 민족의 어울림을 살피고 이를 통해 단일민족 서사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이 훌륭한 기획에 이런 수준의 실수라니,,,

민족주의자들에게 먹이감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해봤다. 

 

최근에 춘천에 살면서 예족이니 맥족이니하는 영동과 영서의 소지역주의에 따른 의식이 드러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되었다. 춘천박물관도 둘러보면서 말이다. 예맥족뿐만아니라 우리고향의 왜까지 고대 한반도는 과연 다양한 핏줄들의 다툼장이었음을 문헌과 고고학자료로 충분이 드러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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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기름기 뺀 솔직한 고대사

역사는 역시 경향의 학문이라는 생각을 강화시켜주는 좋은 책을 읽었다. 이희근의 [고대 한반도로 온 사람들] (도서출판 따비, 2018)로, 부제가 “다양한 종족이 세력을 겨뤄온 고대 한반도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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