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을 바꿨는데, 힘들다. 글쓰기 메뉴 찾는데 5분은 걸렸다. 사진 올리기도 이상하다.
그 유명한 3부작의 첫권을 읽었다.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난 소위 고전이라는 것들에 대해 약간의 반발심을 갖고 있다. 즉, 그런 책들은 웬만해서는 읽지 않는다. 인류학도의 필독서이자 사피엔스의 저자(하라리)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총.균.쇠] 같은책이 그런 예다. 이 책은 우리집 서가에 잘 꽃혀있을 것이다.
2월말 경에, '혁명의 시절'적의 옛동지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마 중국 얘기를 계속했던것 같고, 옛동지는 하라리 얘기를 했던 덧 같다. 어느날 문자가 왔다. 약속했던(?!) 하라리 책을 보낼테니, 주소를 보내달라고. 일단 당황했고, 난 기억에 없지만 약속했다니, 몇일 후 마지못해 주소를 보내고 드디어 하라리의 3부작을 받았다.
걱정과 난감함이 몰려왔다. 나를 기다리는 '중국책'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고, 분명 하라리에게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책이 도착하고, 중국불교가 한반도와 일본의 문화에 끼친 영향을 알아본 후(알다시피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최대한 느긋하게 읽게되었다. 1권, 사피엔스.
이 책은 첫째, 하라리의 놀라운 '태도'에 감동했다. 모든 선입견과 무수한 도그마들의 전제를 잊어라.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결국엔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자세'를 확인했다. '그런 것은 (1억년 단위의)우주역사에서는 사소할 뿐이닌까.'
둘째, 잘 읽히고, 재미있고, 끊없는 지적욕구를 불러온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를 다시 읽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그 지식이 주는 충격들이 결코 가볍지가 않다. 이것들을 안다는 것과, 이것들에 그동안 무심했다는 것과, 이것들에 대한 앞으로의 나의 태도에 대해 자신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셋째, 그의 결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만, 아직 2권의 책이 남아있다. 다 읽은 후에 그의 결론에 대해 뭔가 답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
몇일 휴가를 받아 고향에 다녀오는 병사의 마음을 요즘 느끼고 있다. 이제 돌아가야할 날이 5일 남았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이틀남았다면 모든 일상이 귀찬을 뿐이다. 면도도, 심지여 이도 딲지않고 폐인이된다. 이제 내일 아침 KTX를 타야하는 밤이 오면 나는 공포에 질린다. 이런 이유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이제야 '읽어냈다'(이것은 견뎌내는 것과 같다). 이제 귀대를 했으니, 2권 '호모데우스', 3권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조금은 즐겁지 않을까,,,
이 책을 기꺼이 나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인류의 미래를 '희망'하는 '옛동지'에게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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