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심장은 강하지 못하다, 한 때 펄떡거리며 뜨거운 피를 뿜은적도 있었겠지만, 차갑게 식었음을 안다. 그래서 강한심장이 필요한 소설이나 극영화는 피하려 애쓰고 살았다. 피가 차갑게 식은 후부터,,,

 

다시 심장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책읽기가 늦어졌다. 그러나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독서는 의식을 치루는 것으로 대충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열흘쯤 심장을 가다듬은 후 단숨에 마무리했다. 

 

옌롄커의 소설은 처음이다. 대신 그의 '나와 아버지'라는 산문을 읽었다. 아직 말끔이 치유하지 못한 '픽션공포증' 때문인데, 아마 딩좡몽으로 어느정도 치유되었달까, 설마 이보다 더 강한 심장을 원하는 글이 있을까?

 

허난을 떠 올리면 정저우공항에서 우리부부에게 한시간 이상 붙잡혀 비행기표 문제를 해결해주었던 정저우공항의 인턴여대생이 생각난다. 연락처와 이름마저 물어보지 못했던,,, 바보같았던 배낭여행시절의,,,

 

그리고, 중국의 전라도... 그런 이름을 얻게된 매혈의 고향, 

 

다시 꼭 허난에 가면, 그 마을 언저리에 가게되면, 옌롄커와 허난농민의 삶에 대해 경의를 표하게될 것이다. 

 

 

아, 베이징

 

고대의 황혼

 

굵은 목소리

 

귀향이야기

 

우리의 바다, 라오하이

 

우뢰비

 

지난 몇 년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

 

 

 

이제는 '변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몇년동안 나는 '픽션'을 보고나, 읽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물론 나의 증상은 쟝르소설, 특히 협객소설(무협)에는 해당하지 않는 특이 증상이었는데, 어느 독서광의 책을 보니 이런 증상이 독서관들에게 한번씩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기다리면서도 이게 과연 나을 수 있는 '증상'인지 의심스러웠다. 

 

중국에 대한 '기초학습'은 어느정도 끝났다고 느끼게 되니, 극영화 보기도 가능해졌고, 이제 소설로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이 블로그에도 "중국 소설을 읽다"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게 된 이유다. 

 

어느 블로그에서 하오징팡의 '접는 도시'에 대해 언급했다. 몇몇 신문서평에서는 중국의 도시문제에 대한 어떤 의미를 읽어내고 있었다. 과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중국 소설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 각오로 만든 카테고리닌까,,,

 

발상들은 익숙했다. 에반게리온의 '제4 도쿄'는 사도가 급습할 때 땅속으로 숨는다. 

전후를 살펴봐야 겠지만, 현의 노래는 류츠신이 생각났다.

삶과 죽음은 동방고대설화의 흔한 아이디어다. 

그럼에도 재밌게 읽었고, 글항아리의 묘보설림 시리즈의 책들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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