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이날은 정말 여러곳을 돌아다녔다. 사진도 뒤죽박죽이고, 기억도 뒤죽박죽이니 이해바란다.
검은 고양이가 누워있는 이곳은 본토와의 전쟁격전지중 한 곳이다. 바람이 몹시 불고, 이미 지친 오후라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열심히 설명하시는분은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직전인 진먼다오주민이시다.
이곳은 국립묘지. 중국문화에서 객사는 가장 끔찍한 죽음다. 뼈라도, 영혼이라도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천년유혼에서 유골을 고향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런 문화적 배경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에 계신분들은 장개석-국민당에게 거의 강제로 끌려온 본토출신들로 돌아갈 방법 없는 병사들만 묻혀있다.
823전사관앞에서 단체사진... 8월 23일은 진먼다오에 중국인민군이 전격상륙하여 벌어진 전투일이다. 이 준비없는 무식한 상륙작전으로 중국인민군은 박살이 났고, 이후 여러가지 정치적 상황으로 인민군은 다시 진먼다오를 공략하지 못하고 대만령으로 남게된다.
어떤 장군의 사당인데, 이 기념물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전통 신수(도철?)로 진먼다오의 역사를 은유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말기에 진먼다오는 일본군에게 점령당하는데, 그 시절의 일본억압을 상징하는 기념비이다. 일본군에 끌려 동남아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기에 진먼다오 젊은이들은 차라리 고향을 떠나 화교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이후 성공한 화교들의 고향에 보내는 돈은 진먼다오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진먼다오와 그 옆섬을 이어지는 다리공사. 이 다리는 관광업에 대한 필요에 의해 추진된 듯한데, 본토와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대만정부의 관심이 멀어지자 공사가 지지부지중이다. 준공날짜를 알수 없다고...
1970년대말에 대만과 본토의 대화이후 80년대초 대만본섬은 계엄령을 철회하는 등 민주화조치가 단행된다. 그러나 진먼다오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계엄령하에 있게되었고 이에 진먼다오주민들의 계엄철폐운동이 벌어지게 된다. 진먼다오에 계엄령이 절폐되는 것은 1980년대 말이다. 민주화운동당시의 사진(전시중이걸 찍음).
샤먼을 향해있는 해변에는 이런 장애물외에도 많은 지뢰 등이 묻혀있었다한다.
샤먼을 향하고 있는 대만진영 탱크.
8월 23일 전쟁당시 중국인민군이 일시점령하여 작전본부로 사용했다는 건물. 이 건물에서 지휘부는 몰살 당했다고... 이건물을 70년가까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진먼다오도 놀랍다.
검은고양이가 지키고 있는 전쟁기념물. 왠지 분위기가,,,
과거에 모든 진먼다오 젊은이들은 대학을 위해 본섬으로 갔다고 한다. 최근 국립진먼대학이 세워졌다. 참고로 가이드의 오빠부부가 이곳 교수. 그리고 대학에 근무하신-부총장님이 교정을 보고싶어하여서 드라이브함.
진먼가오량 제2공장.
만세만세만만세....
쇼핑을 마치고 단체사진..
차타고 떠나면서 아쉬워서 한 장 더 찍어본다.
보통 다원이라고 불리우는 공창. 대만영화 '공중낙원'의 배경이된다.
금문다원. 공창.
샤먼을 향해 선전전을 벌였던 지하기지.
이런 통로들이 기지 뿐 아니라 일반 주택가에도 존재한다. 본토의 폭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방문한 마산마을의 회관지하에서 시작하는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면 만나게 되는 중국바닷가의 흔한 신, '풍사'라한다.
이런 출입구로 나온다. 모든 통로는 주민들이 직접 작업했다. 무보수로...
지하기지 통로로 가는 중, 이곳에서 우리는 익숙한 가수를 만나게 된다.
중국인문군을 몹시 괴롭게했다는 대만가수 등려군이다. 대만정부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자살한다(그녀의 사망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자살설은 그녀에게 가해지는 대ㅏㄴ정부의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이라고 부총장님은 주장하신다). 그녀도 이곳을 방문해 본토를 향한 프로파간다에 이용된 듯...
이 선전기지의 이런 통로를 따라가면,
해안을 볼 수 있는 '총안'이 나온다.
샤먼과 가장 가까워 본토로 포를 발사할 수 있다는 기지. 지금은 진먼다오주민(여성까지 섞여서)이 관광상품으로 시연하는 중이다.
시연 후 자유롭게 사진촬영.
이 대포기지 앞의 해변에 어떤 화교가 마련한 마을, 자기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을을 조성했다고한다. 지금은 살아있는 '민'문화 민속촌으로 활용.
영화 공중낙원의 촬영지. 한국처럼 군바리 문화가 너무나 익숙한 나라라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는지, 공중낙원은 관객을 불러모았고, 영화촬영지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곳을 관광지겸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기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영화의 장면.
그리고 마에스트로 우가 운영하는 그 유명한 포탄으로 만든 칼 공방. 재료로 쓰이는 포탄을 활용한 작품. 사실 본토에서 쏜 대부분의 포탄은 선전물을 뿌리기 위한 용도였다. 때문에 탄피가 파괴되지 않고 마에스트로 우에게 갈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가 디면 포탄발사는 그저 의례가 된다. 하루는 샤면에서, 내일은 진먼에서, 모레는 샤먼에서, 빈포탄을 그저,,,
나는 이곳에서 두자루의 칼과 작은 손칼을 얻었다.
공동묘지 입구.
돌아갈 고향을 잃은 병사들의 공동묘지.
공창, 초대소. 이 멋진 화교의 집을 일본인들이 빼앗아 사령부로 사용하다 국민군이 인수받는다. 이후 오랫동안 군간부들을 위한 휴게소, 공창으로 사용됐다. 이제는 관광지.
진먼다오 중심가에도 공창이 있었다한다. 그곳을 찾아보려다 발견한 주희(주자)사당.
진먼다오 출신들중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의 명패다. 우리를 안내했던 분의 오라버니 명패. 이런문화는 당나라시절 과거합격자들이 장안의 대안탑 낙서에서 비롯된 오랜된 문화다. 비석에 새긴다던지, 지역 사당에 명패로 만들어 걸어둔다든지, 이것들은 지역과 함께 영원히 보존될 것이기에 명앙있는 집안에서는 자식들 교육에 열심일 수 밖에.